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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case/Literature

부서진 사월 / 이스마일 카다레 / 문학동네

by Neuls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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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 또는 전통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에도 있으며 어느 민족에게도 있어 그들이 살아 온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곤 한다. 그것은 삶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모양 또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 지역의 독특한 기후와 계절적 특성을 드러내는 가옥들 또는 건축물들이 그렇다. 때론 사람들의 계급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양반, 쌍놈, 백정 등 직업적 특성과 문화의 특질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삶의 역사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전통과 관습을 소중히 여겨야하며 꼭 지켜야 하는 듯 주장하기도 한다. 때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듯 절실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모른다. 이러한 전통 또는 관습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2~30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그 형태와 내용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짧으며, 우리의 역사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때론 강한 왜곡으로 인해 잘못 자리 잡은 것 역시 상당히 많다는 것을. 그래서 때론 우리의 삶을 얽매이게 만들거나,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이러한 내용은 비단 전통이라는 문화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종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전통과 관습, 특히 종교와 기묘하게 엮여 옴짝달짝할 수 없게, 한 젊은 청년의 삶을 비극으로 이끄는 부서진 사월은 마지막 장까지 불편했다. 알바니아 북부지역에서 아직도 이어지는 카눈이라는 관습법으로 인한 이 청년의 삶의 모습이, 과연 부서진 사월의 풍경이라 할 수 있었다. 북쪽 병풍처럼 솟아 누구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듯 회색으로 칠해져 막고 있는 산맥들. 고산지대의 특성상 먹고살기 힘들만큼 토지와 대지는 억새지만, 그럼에도 삶을 이어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지켜야만 하는 카눈이라는 기묘한 종교적 관습법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깊게 자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이 한 개인에게 적용되는 또는 한 가족과 지역 전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과정의 묘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 하나의 개인이 이러한 억압과 과정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과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그랬는지 그 청년의 한 걸음이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막 추위가 풀리고, 들판은 초록으로 물들어 눈이 부시도록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월. 그 청명하고 맑은 계절에 그는 오히려 다시 겨울로 돌아가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운명. 그 운명은 자신이 저질렀지만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삶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까지 짊어져야 했다.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긋지긋한 그 운명을... 그리고 그 운명의 끝은 결국 스스로의 소멸이라는 끝점을 봐야한다는 비극. 마지막의 책장을 덮을 때까지 온 몸을 누르는 억압이 느껴져 한 동안 힘들었던 그런 소설. 아니 우리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몸서리쳐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무엇을 하든 간에 그는 이 정의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결코 무시할 노릇이 아니었다. 카눈은 보기보다 훨씬 강력했다. 카눈은 대지위로, 들판의 경계표지들 위로, 도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각각의 집들의 기초 위에, 무덤, 교회, 한길, 시장에, 결혼식에 배어 있었고, 고지의 목장에도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심지어 그보다 높은 곳인 하늘에까지 잇닿아 있었다. 그리고 카눈은 비가되어 하늘로부터 다시 지상으로 떨어져, 무수한 살인의 동기가 되곤 하는 관개용 운하들을 채우곤 했다. 36.

 

카눈은 완벽해. 카눈은 물질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간에 삶의 단 한 분야도 다루지 않는 게 없어. 111.

 

좀 더 강해지진 했지만 아침 햇살은 그것이 유래한 머나먼 출발지의 싸늘한 냉기를 여전히 간지하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지었다. 오오 하느님. 그는 누군가가 무너뜨리려 애쓰는 오두막의 대들보처럼 양 옆구리가 삐거덕거리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그의 시선은 침울한 산 위로 막막하게 펼쳐져있는 잿빛 하늘 속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산들이 침울해진 것인지는 분갈 할 수 없었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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