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인간, 또는 하나의 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의 과정 또는 성장의 과정을 밟아 나가기 위해선 과거의 경험과 사건을 되새김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을 역사라 부르며 역사의 사건들 하나하나가 쌓아지면서 하나의 인간, 또는 하나의 사회가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우리는 이 역사라고 부르는 단어를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잘 한 것과 잘 못한 것들이 있지만 그 속에서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는 것들만 기억한다. 그래서 이 전에 겪었던 모든 것들이 이 시대에 다시 떠올라 경험하게 되어도 지난 날의 과정을 되새기지 못하고 다시금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된다.
바로 여기 겹겹이라는 작은 책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바라보지 않았던, 아니 회피하기에 급급하였던 역사의 한 자락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의 한 자락은 개인의 기억으로, 또는 개인의 경험으로만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역사는 이제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너무나 오랬동안 방치하였기에 이제는 그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든, 어떤 장소이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것들을 끄집어 내어 다시금 살펴보라고 하는 사람들. 이런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잊혀진 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과오를 되새기며 똑깥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안세홍이라는 사진가가 바로 이런 부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 또는 우리가 속으로만 주억거렸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또는 가슴이 울리도록 이야기한다.
1. 중국에 남겨진 그녀들의 역사와 현실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가야만 했던 20만명의 여성들 중 중국에 남아 그 지난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8명의 할머니들.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야 말로 지난 역사의 흔적이요, 우리가 바라보아야만 하는 실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떠 했을까? 책의 제목 겹겹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까도 까도 계속 드러나는 고통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삶이었다. 누구는 일본군에게 속아서, 누구는 일본군 앞잡이에 속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먼 타향으로 떠났것만, 결국 그곳에서 막닥드린 것은 좌절이요 슬픔이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여년에 걸쳐 자신의 육체를 유린당할 수 밖에 없었고, 질병의 노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독성이 강한 약품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주사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약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겹겹의 슬픔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또다른 군대인 구 소련의 군대에서 또다른 해코지를 당할까봐 여기저기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중국에서 정붙힐 사람을 만나 그럭저럭 삶의 자락을 붙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들의 나이는 90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이는 그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떴고,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은 그 짓눌린 삶으로 인해 구부정해 지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2. 오래된 시간으로 말라버린 마른 눈물... 사진
아직도 중국을 비롯하여 그 피해자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지만 그 규모와 실체를 다 알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만나게 된 그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의 작업들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그렁거린다. 흑백의 명도로 찍한 하나 하나의 사진들. 그리고 그들이 말한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 낸 글들을 보고 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바라만 보게 될 뿐이다. 겹겹이 쌓인 그 삶의 무게가 말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에선 그 눈물마져 마른 듯 보인다. 이국의 타향에서 십수년을 보내고, 고통의 삶 속에 눈물을 마를 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 눈물은 회한과 포기로 남아 내뿜어지는 한 줄기의 담배 연기에서 느껴질 뿐이다. 이러한 느낌들이 잘 살아 있는 사진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담아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의 단편과 시간의 흐름을 한 순간에 잘라 낸 하나의 사진.
3.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남기고자 하는 노력
사진과 함께 글의 이야기는 그 내용과 느낌을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말을 적어내거나 작가의 의도로만 해석하여 놓는다면 그 느낌을 담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오히려 담백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장 직설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면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적혀있다.
"집에 가고 싶지", "꽃을 꺾은 거야", "몸이 많이 아퍼". 길지도 않은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것들이 전달해주는 느낌은 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랜동안 그 단어 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얼마나 그 말들이 마음속에 오랜동안 담겨져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역사적인 실체 위안부. 일본의 대동아전쟁, 즉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으로 진출을 시도하던 시기에 자신들의 군대를 유지하기위해 다국의 여성들을 자본과 육체로 짓밟은 사건 또는 실체. 하지만 아직 일본은 그들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껏 분명히 존재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비겁한 언어로 절하시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국제사회의 역학적 문제에 걸쳐있는 사건이기에 쉽게 말을 꺼지지 못하고, 정당히 외쳐야 할 요구를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부의 무능도 한 몫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우리들 역시 주어진 권리를 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잊혀질 듯한 그 역사의 자락을 잡고 다시금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Bookcase >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모 아르텍스 / 채운 / 그린비 (0) | 2022.02.10 |
---|---|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 / 이상엽 / 북멘토 (0) | 2022.02.10 |
사진의 털 / 노숙택 / 씨네북스 (0) | 2022.02.10 |
On the road / 김문호 사진, 최옥정 글 / 이른아침 (0) | 2022.02.10 |
파미르에서 원난까지 / 이상엽 / 현암사 (0) | 2022.0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