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아니. 생각해보니 너무나 추상적이고 고고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일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람은 다양하다. 그 다양함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각자가 겪은 삶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로부터 시작된 사고의 과정과 이해의 결론, 그리고 우리 각자가 가진 욕망에 의해 그 다양함이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생각들과 성향들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한다. 가끔 누군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받아줄 수 있다는 오해로부터 시작된 실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조그맣게 읍조리는, 알아채기 어려운 입술 모양만 순식간에 지나칠 뿐이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일까? 약간의 긍정을 보탠다면 그 와중에 조금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때가 있다. 아주 우연히 행운과도 같은 시점에만...
평화로운 또는 별다른 일이 없는 순간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그 이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무너졌을 때, 즉 생각하지 못했던 한계상황 또는 벗어날 수 있는 치명적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무언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큰 사건일 수도 있다. 오히려 삶에서 겪게 되는 작은 사건들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한계의 상황과 치명적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을 나누던 누군가와 멀어지면서 나타나는 소외감.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애정의 깊이, 또는 사랑의 깊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나 전쟁 같은 상황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각자의 욕망이 극적으로 드러나며 자신의 존재 또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의심할 만한 모든 행동 또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하여 그들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까? 아... 그렇다고 의도적인 한계 상황을 만드는 누군가를 긍정 또는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 상황 안에 놓여지게 될 때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참으로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형태의 인간 군상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들, 아니 우리 대부분 각자가 가진 생각과 욕망의 선택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택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 행동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 역시 자신의 선택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러한 선택지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 또는 조금의 긍정과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드러내는 다양함 중 하나일 수도 있으리라. 그들은 자신에게 속한 것,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뿐이다. 그것을 치켜세우거나 영웅주의 등으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일 뿐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사람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누군가도 다른 선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음은 계속되고 있고, 만약 사람들이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신들만 생각했다.” P51
“아뇨,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어둠속에서 분명하게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것을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은지도 벌써 오래되었고요.” P151
"나는 관념 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해요.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한 영웅주의는 어렵지도 않고, 또 영웅주의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내가 관심있는 건,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거예요.“ 194
“리외는 으레 그러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것은 랑베르 자신의 문제이고 랑베르는 행복을 선택한 것이며 자신은 그에게 반대할 논거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끼기에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면서 왜 서두르라고 하세요?“ 이번에는 리외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나 역시 행복을 위해 문가 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238
희망을 이야기 한다는 것, 조금의 긍정을 이야기 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서 그러한 긍정을 찾는다는 것, 아니 인간이 가진 그 모든 생각과 욕망 속에서 그것을, 긍정과 희망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조금의 긍정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긍정이 나에게 이어져 다른 풍경으로 또는 조금은 다른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게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 물론 그럼에도 인간은 언제나 똑같게 되겠지만...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고 잃어버린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기억나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자 순수함이었다. 360
반면 리외의 눈에 띈 사람들, 즉 집의 문턱에서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온 힘을 다해 서로를 껴안은 채 황홀하게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던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351
PS.
생각해보니 벌써 세 번째 읽는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냉소적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 그렇기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카뮈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안개 속에 있는 듯 하면서도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무언가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짧은 리뷰도 끄적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꺼내 읽은 그의 이야기는 그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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