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화차”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우리시대의 어두운 단면 중의 하나인 금융과 관련한 그림자를 잘 표현한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영화다. 상영 당시에는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일본의 추리소설로 사회파라는 생소한 장르를 이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정도. 솔직히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은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기 어렵고 감독이나 극작가의 의도와 해석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일본 소설을 영화할 때에는 그 분위기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영화의 흐름과 느낌이 한국적인 느낌과 많이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허나 이 “화차”라는 영화는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 있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 당면한 우리의 삶이 어떤지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라 생각되었다. 영화가 이정도였으면 원작에 대한 관심이 가게 된 것은 당연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소설가로 현재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작가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이런 추리소설을 사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런 장르소설의 경우 흥미위주로만 흐르는 스토리로 짜임이나 작가의 의도, 생각들이 단편적인 경우가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읽기 시작한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에서 일본 사회파 추리 소설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작가의 의도, 그리고 사회적 현상을 치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요소들을 소설속에 반영하는 글들을 보고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예전에 보았던 영화 화차의 원작과 조우하게 되었다.
1. 사회현상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관찰,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시선
소설을 읽어가면서 놀라웠던 것은 사회적 현상과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금융관련 피해자들의 사례들은 물론이거니와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 속에서 고통 받았던 주변사람들의 이해 역시 담겨있었다. 이는 흥미위주의 사건을 넘어서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우리의 눈 앞에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냉철한 시선으로만 멈추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회적 현상의 이해를 풀어나가는 화자는 잠시 경찰생활을 쉬고 있는 혼마라는 형사이다. 형사라는 직업은 냉철해야하고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자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감있는 인물이라기보다는 딱딱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존재이다. 그래서 소설 속 혼마 형사는 이런 직업적 성향을 충실히 드러낸다. 치밀하고 명징한 증거를 찾아다니며 한 여자의 흔적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녀의 흔적을 하나 하나 밝혀내면서 그녀가 처하게 되었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조금씩 드러내게 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옛 말을 되새기며 그녀가 살아왔던 괘적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 추리소설 특유의 미스터리와 짜임새...
장르 자체가 추리소설이다보니 스토리 전체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나 하나의 증거들의 문맥에 드러날 때도 있고, 지나가는 사황에 나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어떤 화자의 툭 던지는 한 마디에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힌트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과 전개가 너무 드러나거나 뻔하다면 그것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다행이도 화차는 이러한 뻔한 스토리를 피하면서 추리소설 특유의 장점을 잘 살렸다.
또한 내용의 긴장감이 책을 읽는 내내 진행된다면 너무나 피곤한 책 읽기가 되기 쉽다. 중간 중간 적당히 흐름을 풀어주거나 쉬어가는 듯한 느낌을 전할 때 다음 장의 내용이 더욱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 역시 잘 살려내고 있으며 특히 화자인 혼마 형사의 가족사를 끄집어 내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3.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이 고스란히 책에도 나타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단순히 동일한 스토리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책을 다보고 나서 일부러 다시 영화를 보았던 나로선 전혀 다른 느낌이라 말하고 싶다. 말하는 화자부터 다르고 책의 결론과 영화의 결론다 다른다. 원작에서 말하고 싶은 것의 여운이 있다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여운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스토리만 받아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적 상황이 다른 것도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드러내고 싶은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들을 비교해보며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해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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