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주제는 이것이다. 사회 전체가 엉덩이로 덤벼든다. 수캐때가 암캐 한 마리를 쫓아간다. 그러나 암컷은 발정하지 않고, 따라오는 수컷들을 비웃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지렛대인 수컷들의 욕망에 대한 한 편의 시(詩) _ 에밀 졸라의 창작노트에서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소설 “나나”의 주제는 명확하다. 에밀 졸라의 창작노트에 적어놓았듯 한 마리의 암컷에 달려드는 그 수많은 수캐들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경험을 저 밑바닥부터 맨 위에까지 단 숨에 달려가는 한 인간의 일생. 그래서 그 인간의 대표인 ‘나나’를 앞세워 당시 프랑스 사회상은 물론이거니와 세기말의 혼란을 극명하게 드러내려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집착.
엉덩이를 두들기며 암탉처럼 걸걸하게 소리를 지르는 통통한 몸집의 나나가 주위에 생명의 향기를 발산하고 여성 특유의 절대권력을 발휘하자 관객들은 거기에 도취했다. 2막부터 나나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즉 무대에서 서툰 연기를 하는 것도, 악보에 맞춰 정확하게 노래하지 못하는 것도, 대사를 까먹는 것도 용서 되었다. 몸을 돌리고 웃기만 하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P. 34
위에서 잠시 보았듯 소설 “나나”에서의 주인공은 하늘이 내려준 뛰어난 외모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풍만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도 눈을 돌리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보기위해 프랑스 사람들이 너도나도 돈을 내고 극장으로 몰려왔다. 거의 다 벗다시피한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환호는 고래로부터 내려온 생물학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에겐 자연과 생활에 잘 적응하는 유전자가 필요했다. 튼튼하고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2세를 낳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2세를 잘 키워야 자신들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이 후의 세대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동안 상존하던 자연의 위기는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아니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 후부턴 인간에게 필요한 유전적 요인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예쁘고 아름답다는 것의 의미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올림포스 산을 지상의 진창으로 옮겨와 모든 종교와 시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이 신들의 사육제야말로 훌륭한 눈요깃감이었던 것이다. 그 모독의 열기가 개막 공연은 보러 온 교양있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전설이 짓밟히고, 오래 된 이미지들이 깨지고 있었다. P. 33
그럼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지금까지 순간순간 선택해 온 아름다움의 의미와 상징들이 저급하고 불결한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은 그 스스로 명확했고 모든 문화와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 예술의 의미로 다가왔다. 아름다움을 묘사한 예술작품들이 그것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부터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예술작품들까지.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의 시각을 새롭게 열어주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향과 내용을 채워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도한 집착과 욕망
그럼 이런 아름다움이 변질되기 시작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글세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시작은 우리의 내면에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욕망과 집착. 즉 추잡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였다.
나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러다면 이제는 도덕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타락해 있었다. 그렇다 밤 아홉시부터 새벽 세시까지의 파리는 그야말로 추잡한 모습이었다. P. 337
성스러운 종교생활을 이어오던 백작은 한 여자에 빠져 자신의 가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내는 신문기자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재산을 갉아먹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위의 여자에 치근덕대고 한 귀족 청년은 자신의 형과 함께 그녀 나나를 공유하는 것에 참을 수 없어한다. 모두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 할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정작 아름다운 그녀 나나는 이 중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가져다주는 돈 맛에 빠져 함께 허우적 거린다.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간다.
비가 그치고 안 뜰에는 깊은 침묵이 앉아있었다. 코크스의 뜨거운 열기와 가스등의 밝은 불빛 때문에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무대 뒤에서는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과 복도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것은 막이 내릴 무렵의 갑갑한 침묵이었다. 모든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귀가 터질듯한 마지막 박수갈채를 받는 동안, 텅 빈 휴게실에서는 질식할 듯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P. 172
항상 이렇게 점철 된 욕망이 종말로 치닫게 되면 결국 허무함만이 남는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지금까지, 아주 오랬동안 경험해왔다. 이렇게 경험해 왔기 때문에 그 결말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좀 더 다른 결과를 기대하거나 욕망한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른 결론을 맛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곧 깨지게 된다.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허무함만 남게 된다. 그리고 모두들 침묵에 들어간다. 허무함을 위해 달려가 던 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지켜 본 사람들도, 그리고 주변에서 무어라 떠들던 사람들도 입을 꾹 다물고 침묵에 빠져든다. 그리고 당장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머릿속에 떠올리기는 한다. 하지만 다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또다른 침묵으로 빠져들고 곧 잊혀지게 된다.
마치 그 으르렁대는 군중 속에서 깊은 슬픔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횃불들이 불꽃을 튀기며 또 지나갔다. 저멀리 밤중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떼처럼 군중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지럽게 흘러가는 그 인파는 미래의 학살에 대한 무서운 공포와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의 외침은 열기에 취해 끊어졌고 수평선 검은 장벽 너머의 미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P. 594
에밀 졸라의 3대 소설이라 불릴만큼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이다. 인간이 내면에 품고 있는 욕망의 시작과 끝은 당시의 시대상과 버무려 써내려간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이어져오는 주제로 유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주제이이고 하다.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어려웠던 소설이라는 생각이든다. 읽어 내려갈수록 이야기 속의 주제들이 지금 현재의 시대와 맞물려 이해되었고 어디까지 더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설명기 어려운 주제라는 생각으로 인해 책을 다 읽고 난 후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Bookcase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오 / 이영미 번역 / 은행나무 (0) | 2022.02.01 |
---|---|
남쪽으로 튀어 / 오쿠다 히데오 / 양윤옥 번역 / 은행나무 (0) | 2022.01.31 |
인간짐승 / 에밀 졸라 / 문학동네 / 이철의 옮김 (0) | 2022.01.31 |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 문학동네 / 양억관 (0) | 2022.01.31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문학동네 (0) | 2022.01.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