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고 다양한 나라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다양한 삶의 모습이 하나의 모습으로 수렵되어진다. 문화적 사회적 형태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 속의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어쩌다보니 태어나 그 사회 속의 일원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꿈 또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삶의 형태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 대한 이해와 관점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서로 많은 이야기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사회적 통념 또는 이성적 기준 등의 잣대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더 쉽지 않다. 어쩌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사회적 규칙과 통념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배워왔던 규칙, 규범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불편하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오히려 사회에 필요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도.
하지만 목공을 하게 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꼭 예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만드는 무언가에 내가 생각하는 어떤 것이 표현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다른 방법 또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나의 주변에 대해 예민해져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예민한 감각이 무언지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차이로만 생각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고민 중에 있다. 만약 그 삶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로 만날 수 있는 과정이 있다면 다르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조금씩 정리하게 된 부분이 바로 과정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지난한 삶의 과정에서의 겪은 경험을 통해 우리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무엇, 단어로 표현한다면 ‘결핍’이라는 것을 채워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예술과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이 예술이 지금 당장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서로의 결핍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오히려 우리의 삶이 더욱 풍부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골드문트의 삶은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 불편함은 위태롭게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예민함과 고민, 그리고 경험의 표현을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자신의 것으로 정리하는 모습.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끝까지 믿고 이해해주는 나르치스의 관계.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지금은 나의 것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저런 글들도 읽어보고 있고, 디자인 또는 예술과 관련된 글들도 접해보며 그 과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즐기고 느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작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이 땅을 누비고 다니기도 하고, 숲을 가로질러 말을 달리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뭔가를 요구하고 약속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여러 가지 것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저녁 하늘의 별, 갈대숲처럼 푸르른 바다, 어떤 사람이나 혹은 소의 눈길, 이런 것들과 마주치는 것이다. 그러면 때로는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그려오던 어떤 일이 바야흐로 벌어지는 듯한 확신과 함께 모든 것의 너울이 벗겨져 내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그런 순간도 지나가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고 만다. 여전히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비밀의 마법도 풀리지 않으며, 결국은 늙어서 안젤름 신부님처럼 노회해 보이거나 다니엘 수도원장님처럼 지혜로워 보이더라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며,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P118.
PS. 헤세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 번째 읽을 때의 감동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세 번째 읽은 지금은 내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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