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어 따뜻한 봄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3월 중순. 지인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이 왔다. 잠깐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 난 뒤 이어지는 요청들. 인테리어 작업들이 이어져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들. 잠깐 고민이 들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손을 놓고 있었고, 지금 공부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하루 일과에 대한 루틴을 만들어 놓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성으로 진행하면서 수정해가면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 모든 것들, 루틴이 흐트러지고 생각하던 것들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이끌렸는지 이러한 생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3주간의 인테리어 작업에 집중하였다.
차량의 뒤 트렁크에서 꺼내 집 한 구성에 방치되고 있던 공구들과 공구함을 챙겨 차에 실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작업이 있는 현장으로 도착했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수인사가 오고 간다. 이윽고 도착한 자재들을 옮기고 작업을 위한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한동안 손에 잡지 않았던 공구들의 무게가 몸으로 느껴진다. 요란한 콤프레셔 소리와 공구들이 울려내는 특유의 소리들이 잠깐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을 한다. 현장의 상황에 맞춰 작업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작은 실수들이 이어지고 정신을 차리려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 잡는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가고 다시 오후가 지나간다. 잊었다고 느껴졌던 현장 특유의 냄새, 공구들의 소리.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읽고 생각해야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그렇게 다시 이어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읽어야 하는 자료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생산적인 일, 몸을 움직여 하루의 가치를 당장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업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때론 너무 하나에만 몰두하여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오히려 이러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다시 상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오히려 더 천천히 생각할 수 있기에, 더 그 깊이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기에... 역시 우연의 경험과 우연의 연속이 때론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만 너무 갑자기 현장에 집중하다보니 몸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제야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되었으나 다음 주 작업을 마지막으로 다시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벚꽃은 이미 지났고,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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