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읽어보려 벼르고 있던 책. 그가 펴낸 장편 만화 2편에 매료되었고 그의 생각과 그의 표현에 감동하여, 그가 초기에 작업했던 만화를 읽게 되었다. 역시 그동안 장편만화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분위기, 그리고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는 만화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그동안 일부러 외면하였거나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의 단면을 현실감있게, 때로는 비꼬아서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도록 하는 그의 능력. 더구나 그의 그림체에서 드러나는 거친 숨결은 스토리의 느낌을 극대화 시킨다. 초기 작품의 특성상 거칠고 자연스러운 결말을 이끌어내는데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날것과 같은 느낌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상황에 대해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만화 속 소재로 나타난다. 우리가 쉽게 간식으로 먹는 프라이드 치킨의 이야기, 어렸을 적 음료수로 친구의 장애를 이용하는 친구의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와 사람들의 욕망의 이해관계를 드러내면서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에만 멈추지 않는다. 때론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즐거운 기억을 끄집어내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직시하게 만드는데 대표적인 것이 '공룡둘리'이다.
어렸을 적 재밌게 보았던 만화로 당시의 소중한 기억을 품고 있어 기분 좋은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기공룡 둘리'. 아마 서른 중반의 사람들이라면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규석은 그 기억을 거침없이 끄집어 내어 난도질 한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제대로된 취업이 불가능해 공장을 전전하던 둘리. 결국 그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공장 프레스기에서 잃어 사회 뒷골목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외계인으로 추정되었던 도우너는 외계 실험실에 붙잡혀 해부되야하는 상황에 처해지고, 너무 커버린 또치는 타조 동물원에 갇혀 살고 있다. 음악적 소질을 뽐내던 마이콜은 하루 벌이를 위해 뒷골목에서 연주하고 귀엽던 철수와 희동이는 가난으로 친구들을 배신한다.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명랑만화로 즐거움을 주던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네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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